- 일찌감치 티켓 예매해놓고 손꼽아 기다리다 어제 다녀왔는데 아직도 좀 알딸딸하다. 레아가 내 앞에서 A whole new world를 부르고 Reflection을 부르고 On my own을 부르다니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구.ㅜㅜ 엄청난 티켓 값의 압박으로 2층에 가는 바람에 정확히 내 앞은 아니고 저~ 아래에 레아가 있긴 했지만 여전히 정신이 쏙 빠지는 줄 알았다. 이 콘서트 때문에 올해도 헤드윅 콘서트는 포기했지만 전혀 후회는 없다. ![]() 7톤짜리 수조에 물을 채운 <보이첵>이나 아크로바틱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특이한 연극으로 인기가 많다는 아이슬란드 연출가 기슬리 외론 가다슨의 작품이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이 연극은 카프카의 소설을 뒤틀지 않고 충실하게 무대로 재현한다. 소설이 분량이 짧은데 이를 구태여 늘리려 하지 않고 80분의 소박한 분량으로 옮긴 것만 봐도 이 작품이 원작에 꽤나 충실하다는걸 알 수 있다. 작품 연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아크로바틱도 원작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번역하는 도구일 따름이다. 주연(그러니까 벌레;) 그레고르 역을 겸하는 연출자 가다슨은 체조 선수 출신 배우이다. 그는 이런 체조 경력을 십분 살려 두 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 벽에 매달리고 계단의 난간을 기어다니면서 벌레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벌레의 형상을 하고 있어도 여전히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것은 그가 네 발로 기어다닐지언정 여전히 분장 없이 사람의 얼굴인 채로 남아있으며 회사에서 입는 정장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이 잘 생긴 사람이 멀쩡한 옷을 입고 사람의 말을 하는데 좀 기어다닌다고(?) 가족들의 멸시를 받고 두들겨 맞는 모습은 기괴하고 아이러니컬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씁쓸하고 괴팍한 분위기는 카프카의 원작이 주는 느낌과 정말 흡사하다. 나오는 사람이 몇 명 없는데다 연출의 힘이 아크로바틱을 수행하는 단 한 명의 배우에게 온전히 실려 있는 이런 연극은 소극장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한 명의 배우가 기괴한 몸짓을 보여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시각적 효과가 온전히 도달하는 물리적 거리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거~대한 LG아트센터는 이 연극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 큰 무대의 양 옆과 위를 막아놓은 것도 일단 엄청 비효율적으로 보였고, 결정적으로 이 넓디 넓은 객석에서는 연출자가 표현하려 했을 신체적 에너지가 충분히 강렬하지 않고 흐릿하게 다가왔다. 배우의 기운이 광활한 공간으로 분산되어 다 사라져버렸달까. 짧은 공연기간 동안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이런 공연장을 택한 것이겠지만 많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스위니 토드>를 보고 왔다. 재작년에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되었을 때 그 공연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너무나 부러워했다. 그 땐 이 작품이 그렇게 빨리 한국 무대에 올라올거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올라온 것만으로도 감개무량이지. 이건 영화로 치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몇십년 동안 개봉을 안하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짠 하고 개봉한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대가의 예술작품을 영접했다는 사실을 빼면 전체적으로 실망스런 공연이었다. 아니, 전체적으로 실망했다기보단 배우들에게 실망한거다. 그래도 뮤지컬이란 장르에서 배우들의 역할이 워낙 크다 보니까 전체적인 공연이 부실하다는 인상이 남는다. 특히 손드하임의 작품처럼 대사/가사의 전달이 중요하고, 칼같이 정확하게 노래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경우, 공연의 질이 배우들의 역량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 공연에서는 정말 많은 양의 대사가 어벙한 발음 사이로 사라졌다.ㅜㅜ (공연 관련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왜 가사집을 로비에서 팔고 있는지 알겠다고 할 정도다;) 일단 공연을 여는 대표곡 'The Ballad of Sweeney Todd'에서부터 코러스들이 합창을 하기만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후로도 코러스 나오는 장면마다 가사 알아듣는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OTL 다행스럽게도 주인공 류정한은 가사나 음정 모두 거의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하지만 배우 본인이 스위니 토드의 캐릭터를 그다지 즐기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였고, 직업이니까 기계적으로 한다는 인상을 준데서 대폭 점수 삭감. 이런 평가는 어쩔 수 없이 굉장히 주관적인 인상이 될 수 밖에 없지만, 아무튼 난 류정한의 연기가 심심했다. 러빗 부인 역의 박해미는 컨디션이 안좋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음정도 놓치고, 대사도 틀리고, 발음도 뭉개지고...실수 만발이었다. 난 박해미 때문에 오늘 공연을 예매한건데 슬펐다.-_- 박해미 본인도 슬펐을거다.=_=; 러빗 부인은 박해미라는 배우의 특징에 상당히 잘 어울리는 배역인데 이런 재난을 맞다니... 터핀 판사 역의 김봉환은 베테랑다운 느낌은 있는데, 묘하게 다른 배우들이랑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유일하게 만족스런 배우는 토비 역의 한지상이었다. 배우들 중 가장 깔끔하게 대사와 노래를 소화했고, 배역을 잘 이해하고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걸로 보이는 유일한 배우였거든. 아무튼 배우들이 이렇게 골고루 마음에 안드는 공연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배우들이 딸리는게 감상에 이렇게 지장을 주는 공연도 오랜만이었다.(아, 난 1층 거의 맨 뒤에서 봐서 배우들 얼굴은 통 못 봤으니 앞에서 보면 또 다를지도 모르겠다.) 발음 문제는 어느 정도는 연출가가 외국인이라서 생긴 문제 같기도 하다. 연출가가 외국인이라는건 최종적으로 배우들의 언어를 통제할 책임이 있는 사람한테 언어를 평가할 능력이 없었다는 얘기니까. 배우들과 달리 무대장치는 맘에 들었다. 무대 후면에 공사장처럼 철골구조를 얼기설기 얽어 3단으로 쌓은 구조물은 무대 뒤편 어둠 속으로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더럽고 타락한 대도시 런던이 무대 뒤로 계속될 것처럼 말이다. 3단 구조물 외의 다른 무대 장치도 앙상한 철골구조물에 집중하고 있는데, 쇳소리 가득한 이 작품에 잘 어울리는 선택 같다. 무대를 입체적으로(혹은 혼란스럽게;) 사용한 것도 평면적인 영화가 아닌 입체적인 공연을 보는 느낌이라 좋았고. 두어 차례 나온 그림자 놀이도 재미있었다. 공연 초반에 문제가 심각했다는 이발소 의자도 잘 고쳐놓았더라. 근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무대장치가 <시카고> 짝퉁 같다는 생각도 드네.--; 작품이 공연된 것에 감격하고(손드하임이 쓴 이 작품 자체는 정말로 근사하다), 배우에 실망하고, 무대장치에 흐뭇했던 요상한 관람 경험이었다. 연출? 흐흥...그런거 보기엔 너무 혼란스러웠거든요. 요상했다니까... * 야옹님이 공연 초반의 의자 문제;에 대해 한국경제에 쓰신 칼럼. 재밌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70928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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