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말 스포일러 있음* 조앤 롤링은 인터뷰에서 곧잘 '해리를 너무 고생시켜 미안하다. 따뜻한 밥이라도 대접하면서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독자들에겐 좀 어이없이 들릴 수도 있는 이런 표현은 작가와 문학작품의 끈적한 관계를 암시해준다. 문학 텍스트는 독야청청, 유아독존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와, 다른 문학작품과, 그리고 이 세상과 얼기설기 얽혀있는 것이다. 영화 <어톤먼트 Atonement>의 원작인 이안 매큐언의 동명소설 <속죄 Atonement>도 이러한 문학 텍스트의 특성을 되짚어 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작가에게 있어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에서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소설의 진실이란 무엇인지를 소설의 형식 그 자체를 이용해서 파고든다. 따라서 진상이 밝혀지는 소설의 결말은 반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강력한 질문에 가깝다. 결말까지 독자가 알고 있던 '이안 매큐언'이라는 현실의 작가가 쓴 <속죄>과 '브라이오니'라는 <속죄> 속 인물이 쓴 <속죄>에는 어떤 의미의 차이가 있는가? 브라이오니는 작가로서 어떠한 힘을 가졌는가? 브라이오니는 소설을 통해 현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작가와 소설에 있어 진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등... 따라서 <속죄>의 영화화는 작품의 이러한 주제의식을, 그리고 그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형식을 어떻게 영화의 언어로 옮기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있었다. 사실 안전한 할리우드 식으로 가자면 이 같은 소설의 주제는 마지막 깜짝 반전 정도로 넘어가거나, 아예 사라져도 그만인 부분이다. 매큐언이 문학의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이용한 소설의 몸통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럴듯한 완결성을 가지는 '스펙터클 액션 로망','눈물의 대서사시'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라이트는 영화 <어톤먼트>를 할리우드 식 멜로 사극으로 남겨놓는 대신, 원작의 문학적 고민을 충실히 영화적으로 옮기고 있다. 라이트의 이 같은 접근은 영화가 어둠 속에서 막이 오르며 타자기 소리가 들려오며 시작된다. 이 타자기 소리는 물론 1999년 할머니 브라이오니가 소설을 쓰는 소리이다. 영화는 이렇게 '작가가 소설을 쓰는 행위'라는 원작의 주제를 타자기 소리라는 영화적 심상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리고 이 타자기 소리는 차츰 어린 브라이오니가 타자를 치는 소리와 겹쳐진다. 이 때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은 영화 시작할 때 어둠 속에서 들려온 타자 소리가 화면에 등장하는 어린 브라이오니의 타자 소리라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귀밝은 관객들과 원작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할 때의 타자 소리와 어린 브라이오니의 타자 소리가 다른 스피커에서 울린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영화는 계속해서 비슷한 방식으로 소설의 주제를 시청각적으로 환기시킨다. 영화가 브라이오니의 시점과 로비/세실리아의 시점 사이를 이동하는 부분은 어린 소녀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소설(그리고 영화)에서 시점과 화자의 위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가끔씩은 소설에서 그대로 따온 대사가 직접적으로 주제를 외치고 있기도 하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수 있어. 다시 돌아가서 너와 결혼해서 명예롭게 살거야(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로비의 편지는 1차적으로는 애절한 연애 편지지만, 그 기저에는 작가가 마음대로 지어내는 허구의 이야기라는 소설의 특성에 대한 암시가 담겨 있다. ![]() 조 라이트는 이렇게 매큐언이 사유하고자 한 문학 텍스트의 철학적 의미를 은밀하고 섬세하게 영화적으로 옮겨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심오한 문학 강의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화는 할리우드식 '멜로드라마 겸 스펙터클 시대극'의 역할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오는 클래식한 재미도 만만치 않다. 영화의 전반부 뜨거운 여름날 탈리스 저택은 회고적 느낌으로 아름답다. 특히 거울에 비친 키라 나이틀리, 녹색 드레스를 입은 키라 나이틀리, 물에 들어간 키라 나이틀리 등등 키라 나이틀리는 그 고전적인 외모가 진짜 뿅가게 아름답다. 후반부 됭케르크의 징그럽게 긴 롱테이크도 기술적 성취를 통해 엄청난 시대극의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전략을 차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도 '영화적'으로 그려진다. 이안 매큐언은 이 소설에서 교묘한 상황 설정을 통해 미성숙한 사람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표현했는데, 영화는 이러한 소설의 장점을 제대로 옮겨내고 있다. 세실리아가 로비를 의식해서 나가기 전에 거울 한 번 더 쳐다보는 장면, 로비가 야한 말 써놓고 혼자 피식 웃는 장면, 브라이오니가 지가 잘난 줄 알고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라고 증언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그렇다. 물론 이러한 심리묘사가 잘 된 데에는 배우들의 공도 크다. 특히 혼자 잘난 맛에 사는 13살 브라이오니 역의 시얼샤 로넌은 굉장히 명민하게 자기 역할을 해낸다. 이 꼬마는 얼굴에 똘똘하다고 써있다니까. 조 라이트는 제인 오스틴의 고전이건 이안 매큐언의 문학 담론이건 가리지 않고, 문학작품을 영화로 재해석하는데 있어 굉장한 내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종의 '번역' 작업은 그의 스타일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그것도 단 두 영화만에 말이다. 앞으로 그가 새로운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게 될 때는 또 어떤 작업을 할지, 원작 없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작업하면 어떤 영화를 만들지 엄청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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