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극작가 로나 먼로의 <Iron>을 번안한 <강철>을 봤다. 제목만큼이나 '쎈' 연극이라 좀 힘들었다. 대본부터가 만만치 않은데 연출도 숨돌릴 여유를 거의 안주고 강력하게 감정을 몰아붙인다. 일단 무대부터가 무시무시하다. 무대의 배경쯤으로 볼 수 있는 후면 벽을 온통 차지하는게 주인공의 감방으로 이르는 경사로인데, 이 경사로의 기둥이 사선으로 무대바닥에 내리꽂힌 굵은 철심이라는게 시각적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게다가 다른 주요 장치나 소도구도 죄다 차디찬 '강철'로 되어 있어 보는 사람이 쫄 수 밖에 없다. 음향도 이 같은 비주얼에 보조를 맞춰 배우들이 쇠파이프(-.-)를 서로 부딪히는 소리나 육중한 철제 감옥문이 열리고 닫히는 효과음이 신경을 긁는다. 배우들이 하는 건 냉동실 온도만큼이나 차갑게 말을 내뱉거나,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 지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연극의 내용이 도대체 뭔데? 연극의 주인공은 15년 전 남편을 살해한 무기징역수다. 그녀는 남편을 죽인 이유에 대해서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않은 채 15년을 보낸다. 어느 날 주인공의 딸이 그녀가 수감된 이래 처음으로 면회를 오는데, 이 딸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을 때의 충격 때문인지 어렸을 때의 기억을 상실한 상태다. 두 사람은 조금씩 어색함을 깨고, 과거를 되짚거나 현재를 이야기하면서 15년 전 살인 사건의 진상에 점점 가까워지는데, 여기에는 물론 반전이 빠질 수 없다. 표면상의 줄거리는 이렇지만, 먼로는 여기에 담고 싶은 얘기가 무지 많았던 것 같다. 비인간적인 교도소의 환경, 장기 수감자와 교도관의 심리와 신경전, 가정 폭력(남편이 아내에게 행사하는 폭력과 그 반대의 경우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심리, 딸과 어머니의 관계 등등등... 이렇듯 죄다 어두컴컴한 주제들은 연극 안에서 상당히 꼼꼼하게 표현된 편이고, 정말 강철 같은 힘으로 관객의 심리를 꾸욱 압박한다. 연극 내내 벌어지는 일이라곤 거의 대부분이 어머니와 딸의 대화밖에 없지만 110분 가량의 짧은 분량 덕인지 마지막까지 힘이 달리지도 않는다. 다소 모호한건 결말의 반전에서 제시되는 주제인데, 연극은 반전 후에 약간의 후일담 정도만을 간략히 보여준 후 허둥지둥 막을 내려서 이에 대해서 별로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충격을 준 뒤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고 선택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는 전략 같은데, 글쎄...내겐 너무 어려운 숙제올시다. 이러한 결말은 이 작품이 굉장히 난해하면서 다양한 주제가 하나의 큰 주제로 수렴되는 지점을 찾기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유머도 거의 없고 사람 힘들게 만드는 동시에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연극이다. 안그래도 묵직한 작품을 이렇게까지 무시무시하고 뻑뻑하게 연출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얼핏 들긴 하지만, 굉장히 효과적이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을 윤소정의 연기는 당연히 노련한 베테랑답게 훌륭하다. 윤소정의 연기는 분명 이 작품을 더 차갑고 단단하게 만드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배우들도 좋았지만, 사실 윤소정에 가려 빛을 못 보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건 여자 교도관 역의 서이숙이 부치스런 이미지로 나오는데(원래 그런 이미지의 배우인지는 잘 모른다), 정작 대본의 내용은 그런 이미지와는 도통 관련이 없다는 것. 몰입을 깨는 기묘한 부조화였는데, 이렇게 단단한 극에 그런 모순이 있다는 것 자체가 숨쉴 구멍을 주는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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